성경적이라는 개소리
우리는 속고 있다.
사람을 지배하는 가장 근간에 있는 것이 무엇일까?
돈? 정신? 환경?
모두 아니다. 나는 사람의 가장 밑바닥에는 종교가 있다고 생각한다. 각 개인이 가지고 있는 종교,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종교적 세계관이 개인을 형성하는 근간이 된다.
사람은 기본적으로 종교성을 지니고 있다. 무신론자라 하더라도, 그 역시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확고한 믿음과 무신론이라는 종교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라 보아야 한다.
종교는 사람을 형성하고, 사람이 모인 사회를 형성하며, 사회 안에서 양산되는 문화를 생성한다. 문화 안에는 종교를 배경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속담과 관용어들이 존재함으로써 다시 사람들의 생각과 관념을 형성하며 강화시킨다. 결국 어느 사회이든지 그 것을 이루는 가장 바닥에는 종교가 있다.
인도를 여행하던 한 사람의 이야기이다. 어느 지역을 지나기 전에 가이드가 이렇게 말을 했다고 한다. “아이들이 아무리 불쌍해보이고 구걸을 해도 절대 돈을 주지 마세요.”
실제로 그 곳을 버스를 타고 천천히 지나고 있는데, 수많은 아이들이 몰려나와 창문을 향해 손을 뻗으며 구걸을 하더란다. 하지만 그 사람은 아이들의 요구를 무시했으며, 버스는 그대로 그 곳을 지나쳤다.
그런데, 그 사람은 마지막으로 봤던 아이들의 눈빛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자신을 바라보는 아이들의 시선이 마치 엄청 불쌍한 사람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눈빛이었다는 것이다.
나중에 알고 보니 힌두교에서는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 다음 생에 더 좋은 환경에서 태어날 수 있다는 믿음이 존재했기 때문이란다. 아이들은 자신에게 적선하지 않은 상대방이 다음 생에 받을 수 있는 복을 거절했다는 생각에 불쌍하게 바라봤던 것이다.
과연 그러한 태도가 인도에만 국한된 것이겠는가? 불교와 유교의 정신이 민중들 안에 오랫동안 뿌리깊이 박혀 있던 우리나라 역시도 큰 차이는 없다. 우리나라는 유교국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효를 강조하며(마땅한 가치이긴 하다), 체면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가축을 기르고 그것들의 목숨을 스스럼 없이 빼앗으며, 그것들의 살과 피를 나의 양식으로 삼는 것도 종교의 역할이 크다. 인간의 내면 깊은 곳에서는 이미 신이 인간을 위해 동물들을 먹을거리로 주었다는 종교관이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누구도 종교와 분리될 수 없고, 어떤 식으로든 종교와 접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문제는 종교가 인간의 삶을 더욱 존엄하게 만들고, 사회를 아름답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맹목적인 신앙을 요구하며 그들의 피를 빨아 자신의 배를 채운다는데 있다. 어떻게 하냐고? 그건 천천히 알아보기로 하자.
성경적이라는 거짓말
최근 100년 이내에 한반도 안에서 가장 폭발적인 성장과 성공적인 포교가 이루어진 종교는 단연 기독교일 것이다. 세계에서 제일 큰 메가처치가 존재하고 있으며,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선교사를 파송한 국가가 바로 대한민국이다.
하지만 그만큼 종교사기꾼도 많고 피해자도 많으며, 더 나아가 스스로 사기꾼인지 피해자인지도 자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태반이다.
성경에 대한 한국 개신교인들의 신뢰와 열정은 정말 어마어마하다. 사실, 성경에 대한 열의 마저도 자신의 욕망을 이루기 위한 방편의 또 다른 발현이라고 생각하기는 하지만 말이다.
교회는 교인들의 이러한 애정과 신뢰, 충성을 바탕으로 돈을 빨아먹는 제습기가 되어버렸다. 헌금이라는 명목으로 돈이 모두 빨려버린 사람들은 수분이 모두 빠져버려 바삭바삭 조각조각 부스러져버릴 뿐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하나님이 갚아주실 것이라는 확고한 믿음을 여전히 버리지 못하고 있다. 개중에는 발빠르게 알아채고 손절을 치는 현명한 사람들도 존재하긴 한다.
교회가(물론 대한민국의 전체 교회는 아니다) 교인들의 돈을 빨아먹는 손쉬운 방법 중 하나는 성경을 들이미는 것이다. 교인들은 성경에 쓰여있다고 근거를 들이대면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교인들에게 있어서 성경은 곧 하나님 말씀이기 때문이다.
즉,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이 자신에게 직접 “성경에 기록된 그대로” 말씀하신다는 것이기에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교회는 그렇게 십일조를 갈취하고, 건축헌금을 상납받으며, 감사헌금을 강탈한다. 소득의 십분의 일은 하나님의 것이기에 십일조를 내야 한다고 강조하며, 하나님의 집을 세우면 하나님께서 나의 집을 세워주신다고 하면서 건축헌금을 강요한다. 또 자신이 이렇게 살아가는 모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므로 감사헌금을 내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한다.
그들에게 나는 이렇게 질문하고 싶다. “성경에 써 있으면 그것이 다 맞는 말인가? 무조건적으로 지켜야 하는가? 왜 그런가? 그것이 사실이라는 것을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
십일조에 생각해보자. 십일조는 과연 성경적인가? 아니, 성경적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성경 전체에 기록되어 있다는 뜻인가, 아니면 어느 한 구절만 기록되어 있어도 성경적이라고 말하는 것인가? 만일 다른 부분과 충돌되는 것이 있으면 그것도 성경적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국 교회에서 십일조에 대해 강조하며 내세우는 성경 구절은 말라기 3장 7-12절이다.
7.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 조상들의 날로부터 너희가 나의 규례를 떠나 지키지 아니하였도다 그런즉 내게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나도 너희에게로 돌아가리라 하였더니 너희가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돌아가리이까 하는도다.
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둑질하였나이까 하는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봉헌물이라
9.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둑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메뚜기를 금하여 너희 토지 소산을 먹어 없애지 못하게 하며 너희 밭의 포도나무 열매가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12. 너희 땅이 아름다워지므로 모든 이방인들이 너희를 복되다 하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교회의 주장은 십일조가 하나님의 것이므로, 십일조를 내지 않는 것은 곧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 하는 것이라는 말이다. 하나님이 전지전능하며 어느 것도 부족함이 없는 분이라고 하면서, 왜 사람이 수고하여 얻은 소득의 십분의 일을 탐낸다는 말인가?
그냥 솔직하게 말하라. 교회를 운영하고 목사에게 사례비를 지급하는데 당신들이 번 돈의 일부가 필요하다고! 당신들이 와서 먹는 밥값, 전기세, 임대료, 건물유지비 등을 충당하려면 돈이 필요하다고 말이다.
한국사회에서는 아직도 돈이라는 단어를 입에 올리면 저급한 사람으로 취급을 받으니, 품위있게 신의 권위를 빌려 십일조를 하라고 박박 긁어대는 것 아닌가 말이다.
물론, 내가 말라기 본문에 대한 해석에 대해 잘 알지 못해서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신의 이름을 빌어 가난한 자들에게까지 금전적 착취를 일삼으며, 빈자에게 베풀어져야 할 십일조의 시혜가 마땅히 행해지지 않기에 분통을 터뜨리는 것 뿐이다.
성경적이라는 개소리로 종교적 식견이 낮은 대중들을 현혹하여 어긋난 신앙관을 갖게 하고, 사람들의 생활을 더욱 처참한 지경으로 몰아가는 행태에 분노하는 것이다.
어느 목사님이 목사 안수 받던 날, 어머니께서 이렇게 물으셨다고 한다. “O목사, 나는 평생 십일조 하며 살아왔는데, 언제 복 받는가?” 더 이상 무슨 말을 해야 하는가? 속은 사람이 잘못인가 아니면, 속인 사람이 잘못인가? 그도 아니면, 자신이 속은지도 모르고 또 다시 남들도 속게 만들면서 진실이 무엇인지 분별하려고도 하지 않는 지도자들의 잘못인가?
도망치는 것도 방법이다.
예전에 방영하던 주말연속극에서 “아닌건 아닌겨~” 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분이 있었다. 그렇다. 아닌건 아닌거다.
나는 종교사기를 치며 교인들의 등골을 빨아먹는 개같은 목사놈들에게는 도망치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한국교회의 정서 특성상 목사에게 반기를 들며 저항하는 것을 힘겨워하기 때문이다. 결국 남은 방법은 그 곳을 빠져나와 도망치는 것 말고 또 있겠는가?
일전에 내가 잠시 몸담았던 교회가 그런 교회였다. 아직도 그 목사를 생각하면 쌍욕이 절로 나온다.
그는 먼저 하나님께 드리면(헌금하면), 하나님이 그 이상으로 갚아주신다고 설교했다. 만일 다시 만난다면 이렇게 묻고 싶다. “그래서 헌금 넣으면 수익률 몇 퍼센트로 언제까지 갚아주는 겁니까?”
또 이렇게 설교한 적도 있었다. 사도행전 5장에 나오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이야기를 하며, 헌금 내지않고 빼돌리거나 하면 죽는다고 말이다.
그 날 처음 알았다. 하나님이 일수꾼보다도 훨씬 더 두려운 존재라는 것을... 그러니 헌금 낼 돈이 없으면 빚을 얻어서라도 헌금부터 해야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부디, 성경적이라는 개소리를 액면 그대로 믿지 않기를 바란다. 또한,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고 쓰여진 그대로 믿지 않아야 한다. 그렇다고 또 비유로 풀이한다는 말도 듣지 마시라. 그냥... 돔황챠... 라고 말하고 싶다.
만일, 도저히 떠날 수 없다면, 의심하고 질문하고 따져보며 샅샅이 파헤쳐보라. 관련 서적들을 읽어보고 공부하며, 예수의 가르침에 대한 참된 의미를 찾기 위해 분투하시라. 이것들이 단 한 번 뿐인 당신의 소중한 삶을 지켜줄 것이다.
그것도 쉽지 않다면... 이어지는 글들을 천천히 따라 읽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지 않을까? 나는 계속해서 글을 연재할 생각이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