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식 없는 안식일
안식일은 언제일까?
안식일에 대한 질문 중 가장 바보같은 질문이 바로 "안식일은 언제인가요?" 라는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하루가 시작되었던 태초의 기준이 어느 날이었는지도 모르는 시점에서, 과연 마지막 일곱째 날이라는 안식일이 언제라고 어떻게 단정지을 수 있겠는가?
유대인들은 토요일을 안식일로 정하고 지킨다. 정확히 표현하자면 금요일 일몰부터 시작하여 토요일 일몰까지 안식일로 지켜진다. 유대적 세계관에서는 일몰을 하루의 시작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세기에서도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라고 표현한다.
토요일이 안식일이라는 관념을 대한민국에서는 하나님의 교회와 안식일교회에서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들이 주장하기로는, 토요일이 성경에 명시된 안식일이며, 안식일에 예배를 드려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간혹 드는 생각이지만, 토요일에 예배 드리는 사람은 구원해주고 주일에 예배드리는 사람은 구원의 반열에서 제외시키는 하나님은... 정말 나만도 못한 양반이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해도 더 잘하겠다! 그 정도의 신이라면 너나 믿으세요~)
어쨌든.. 현재로써는 안식일에 대한 공통된 인식은 토요일이다. 유대인들은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키고 있으며, 안식일교회에서도 동일하게 지킨다.
"안식 후 첫날" 예수가 부활한 것을 기념하여 예배하는 기독교가 매주 일요일에 예배를 하고 있으니, 토요일이 안식일이라는 것은 누구나 긍정하는 공통된 의견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토요일이 안식일이라는 것은 어디까지나 그 날 안식하기로 결심하여 안식하지만 더욱 격렬하게 안식을 누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안식일은 일요일이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일요일에 안식을 취하기 때문이다.
그럼, 대다수의 사람들 입장에서 안식일은 일요일이라고 단정할 수 있겠다. 어느 요일이 안식일인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느 요일에 안식을 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요점이다.
안식일의 의미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창 2:1-3)
하나님은 6일 동안 천지창조를 마치시고, 7일 째 되는 날에는 안식하셨다. 혹자는 7일째도 창조의 연속선으로 보며, 안식을 창조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7일째 되는 안식일은 하나님도 쉬셨기 때문에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은 의무적으로 쉬어야만 하는 날이다. 마치 식당에서 "100세 이하는 금연" 이라는 말과 비슷하다.
성경의 여러 곳에서 안식일의 근거로 하나님의 안식을 제시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안식하셨기 때문에 모든 이들이 쉬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대상은 주인 뿐 아니라, 노예들과 손님들 그리고 가축들까지 모든 호흡하는 생명들에게 해당이 된다.
안식일 법은 철저하게 약자를 위한 약자배려법이다. 주인들은 하인들에게 일을 맡겨두고 쉬고 싶을 때면 아무 때든지 쉰다. 그게 권력자와 주인의 특권이고, 모두가 부러워하는 삶이다. 하지만 하인들과 같은 약자들은 쉴 여유가 없다. 주인을 위해 계속 일해야 하고, 주인의 시중을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식일 법은 일주일 중 하루는 노예까지도 쉴 수 있게 해 준다. 만약 일을 하면 돌로 쳐죽여서 절대로 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규정해두었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주인이 노예에게 일을 시킬 수 있겠는가?
따라서, 안식일은 누구나 사람답게 살 수 있게 해 주는 법이다. 하루만큼은 온전히 쉼을 누리며 지친 몸과 마음을 회복할 수 있게 해 주는 법이다. 약자에게는 희망을 주고, 강자에게는 약자를 배려하는 마음을 갖게 하는 법인 것이다.
안식 없는 안식일
그럼 오늘날에는 안식을 충분히 누리고 있을까?
한병철 교수는 그의 저서 "피로사회"에서 우울증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 낸 한국의 성과주의를 비판한다. 다시 말해, 우리 사회는 전혀 안식을 누릴 수 있는 사회가 아니라는 것이다. 무한경쟁 속에서 잠시라도 쉬면 금새 도태되버리고 마는 그런 피로사회인 것이다.
그래도 요즘은 워라밸을 중시하는 문화가 많이 확산됨에 따라 주말마다 캠핑을 다니며 안식을 누리기도 하고, 취미활동을 통해 안식을 취하기도 한다.
그럼 교회는???
예수는 "수고하고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하고 말했다. 그래서 교회에 가는데 거기엔 예수가 없는 것 같다. 쉬게 하는 것이 아니라 지치게 한다. 쉼을 얻고 싶어서 갔는데 노동이 기다리고 있다. 봉사를 기쁨으로 받아들인다면 쉼이 될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주일은 무지 피곤하다. 교회엔 예수가 없나보다.
일례로, 교회 청년회장의 일요일 스케쥴을 살펴보자. 아침에 일어나 챙기고 집에서 나와 8시 30분 정도에 교회에 도착한다. 찬양대 연습을 하고, 9시에 시작하는 1부 예배에 참석하여 1시간 동안 예배를 드린다.
예배가 끝나면 찬양대 연습을 30분 정도 하고, 그리고 곧바로 유치부 교사 회의에 들어간다. 교사회의가 끝나면 다시 11시에 유치부 예배가 시작된다. 유치부 예배는 장년부 예배와 비슷하게 마무리 되기 때문에 12시 정도에 끝이 난다.
유치부 예배가 끝나면 유치부 부서실 뒷정리를 하고 점심을 먹는다. 식사를 마치면 오후 1시 정도가 된다. 이후 30분 정도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가 1시 30분에 청년부 모임에 참석한다. 모임이 끝나면 2시 30분에서 3시 정도가 되는데, 그 다음은 임원회의가 또 있다.
임원 회의까지 모든 일정이 끝나고 다면 대략 오후 4시 정도가 된다. 정리하고 집에 가면 5시이다. 하루가 다 갔다. 곧 월요일이다. 이 정도면... 참.. 00 안하는게 용하다.
이게 안식일이냐!? 근무일이지!!!
안식일이 예배하는 날이라고?
청년 회장에게 일요일은 안식일이 아니라 평일보다 조금 덜 피곤한 날이다. 하루에 세 번의 예배를 참석하니 신실해지지 않을 수가 없다. 반대로 자기 삶에 대해 신실해져서 교회를 안나오게 되는 경우도 제법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예배가 너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 하나이다. 어린 아이들 보며 인사 안한다고 버릇없다 말하는 꼰대들처럼, 하나님도 예배 안한다고 지적질하는 그런 분이시려나?
구약성경에 보면 이스라엘 남자들이 의무적으로 제사를 드려야 하는 것은 1년에 세 번 뿐이었다. 물론 신약시대로 넘어오면서 회당 중심으로 모이며 안식일에 율법을 강론하고 배우는 시간을 갖긴 했지만, 이처럼 하루에 세 번이나 예배를 드렸을까 하는 의문이 든다.
부모님 세대의 어른들은 "주일성수"를 매우 강조하셨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며 주일에 교회 아닌 다른 곳에 가는 것도 금지하셨다. 주일은 예배드리는 날이라고 못을 쾅쾅 박아둔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어떤 이들은 회사 때문에 주일에 교회 예배 빠지는 것으로 상당한 죄책감을 느끼고 괴로워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안식일이 예배하는 날일까? 이건 마치 직장 상사가 중국집에서 "아무거나 시켜, 비싼거 먹어도 되. 나는 짜장면 먹을게~" 라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 아닌가? "안식일이니까 쉬어~ 근데 누가 나와서 예배하고 있는지 궁금하니까 그건 보고 있을게~" 라는 말이잖은가?
예배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왜 아담은 에덴에서 쫓겨날 때까지 단 한번도 예배한 적이 없는가? 하나님이 7일째 되는 날 안식하셨고, 그것을 아담에게도 가르치셨을 것인데 어째서 아담은 예배하지 않았을까?
예배학교수는 수업 시간에 이렇게 말했다. "사람은 예배하는 존재다." 그런데 최초의 사람인 아담은 예배한 적이 없다. 그가 한 일이라고는 자신들에게로 오는 짐승들의 이름을 지어주고, 에덴을 경작하며 지키는 것, 그리고 아내인 하와와 짝짝꿍하며 살아가는 것이었다.
신학교에 다닐 때, 교내 예배시간이 되었는데도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는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다. "야~! 예배 들어가야지~! 너는 아빠가 목사님인데 그렇게 예배 빠져서 되겠어!?". 그 때 그 친구가 이렇게 대답했다. "야! 나 예배 질렸어~ 너나 많이 드려~"
안식일은 예배하는 날이기 이전에 안식하는 날이다. 안식하는 날이어야 한다. 예배하더라도 예배를 통한 쉼을 누리게 해 주어야 한다.
목사들이여... 그만 좀 볶아라... 너무 볶아서 단단해지다 못해 이제 부스러질 지경이다... 이제 우리로 안식을 누리게 하라!